‘플렉시 윙’ 논란이 말해주는 것
F1을 보다 보면 “플렉시 윙(flexi wing)”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의외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그냥 “윙이 좀 휘는 거 아닌가?”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 논란은 단순히 구조가 약해서 휘는 문제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속도가 올라가면 공력 성능이 바뀌도록 구조를 설계한 것
에 가깝다.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윙은 각도가 중요한가
F1의 앞뒤 윙은 공기를 눌러서 차를 지면에 붙이는 역할을 한다. 이때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바로 윙의 각도, 즉 AoA(angle of attack)다.
각도가 크면 공기를 더 강하게 눌러서 다운포스는 커진다. 대신 공기저항도 같이 커진다. 반대로 각도를 줄이면 저항은 줄지만, 다운포스도 같이 줄어든다.
그래서 항상 트레이드오프가 생긴다.
- 저속 코너에서는 다운포스가 필요하다
- 고속 직선에서는 저항을 줄이고 싶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가 흔히 아는 DRS 같은 “능동 장치”다. 필요할 때 윙을 열어서 저항을 줄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걸 굳이 장치로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 DRS(Drag Reduction System; 항력 감소 장치)
윙이 스스로 움직인다면?
이 질문에서 출발한 개념이 바로 플렉시 윙이다.
속도가 올라가면 공기 힘은 단순히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즉, 빠르게 달릴수록 윙에 가해지는 하중은 급격하게 커진다.
이걸 이용하면 이런 일이 가능해진다.
- 저속에서는 하중이 작아서 윙 형상이 유지된다
- 고속에서는 하중이 커져서 윙이 눌리거나 비틀린다
결과적으로,
- 저속: 큰 각도 유지 → 다운포스 확보
- 고속: 자동으로 각도 감소 → 저항 감소
즉, 별도의 모터나 제어 없이도 속도에 따라 공력 특성이 바뀌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플렉시 윙의 핵심이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었나
여기서부터가 흥미롭다.
F1 규정에는 기본적으로 “주행 중 움직이는 공력 장치는 금지”라는 원칙이 있다. 그런데 팀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구조물이 공기 힘 때문에 변형된 것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액추에이터도 없고, 제어 시스템도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정지 상태에서 검사하면 아무 문제 없다. 저속에서도 거의 변형이 없다. 그런데 고속으로 가면 윙이 눈에 띄게 눕는다.
그 결과:
- 직선에서는 저항이 줄어서 더 빠르게 달리고
- 코너에서는 여전히 다운포스를 유지한다
이건 사실상 “움직이는 윙”과 같은 효과다.
그래서 FIA는 계속 기준을 조정해왔다. 정적 하중 시험을 강화하고, 실제 주행 중 변형까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본질은 결국 이거다.
“이게 그냥 구조 변형인가, 아니면 기능적으로는 움직이는 장치인가?”
이걸 단순히 ‘휘는 문제’로 보면 안된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좀 약하게 만들면 휘는 거 아닌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렇게나 약하게 만들면:
- 형상이 망가지고
- 진동이 생기고
- 심하면 파손된다
F1 팀들이 하는 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 어떤 속도에서
- 어느 정도 하중이 걸릴 때
- 어떤 방향으로
- 얼마나 변형될지
를 의도적으로 설계한다.
즉, 이건 단순한 강성 문제가 아니라 공력과 구조를 동시에 설계하는 문제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리어 스포일러가 있다고 하자.
- 저속에서는 다운포스를 만들고
- 고속에서는 자동으로 눕거나 비틀려서 저항을 줄인다
그리고 이걸:
- 모터 없이
- 센서 없이
- 제어 없이
구현할 수 있다면?
아이디어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복합재가 등장한다
여기서 복합재료가 중요한 이유가 나온다.
금속은 강성의 크기는 바꿀 수 있지만, 변형의 “방향”을 정밀하게 제어하기는 어렵다.
반면 복합재는 적층 방향을 바꾸면:
- 어느 방향으로 휘는지
- 비틀림이 같이 생기는지
까지 설계할 수 있다.
즉,
단순히 “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만 변형되게 만드는 것”
이 가능해진다.
이게 바로 aeroelastic tailoring이라는 개념이다.
엔지니어에게 이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
F1의 플렉시 윙 논란은 단순한 규정 싸움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구조 변형을 이용해서 공력 성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 검증된 사례에 가깝다.
다만 그걸 자동차로 가져오려면 조건이 붙는다.
- 아무렇게나 유연하게 만들면 안 되고
- 변형을 “설계”해야 한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복합재로 휘게 만들 수 있냐?”가 아니라
“원하는 조건에서 원하는 방향으로만 변형되게 만들 수 있냐?”